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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고철 주워 가정 일구며 이웃 도와 "가난해도 나누면 배고픔 면할 수 있어"

아름다운 사람- 어버이날 '장한어버이' 국민포장 수상한 김인자씨 신대휴 국장l발행일2017.05.15l수정2018.07.1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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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강하다’고 말한다. 이를 증명하듯 몸이 부서져라 일하며 가족과 이웃에 헌신하고 베푸는 삶을 살아온 어머니가 있다. 장애가 있는 큰 딸과 3남매의 생계를 위해서 한시도 쉬지 않고 폐지, 고철 등을 줍는 일을 했다. 굿은 일로 생활하면서도 마을과 지역 사회에 정이 깊어 마을 발전과 화합에도 앞장서서 솔선수범하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나는 부자”라고 생각하고 폐지, 고철 등을 팔아 이웃 소외계층을 위해 30여 년 간 '나눔'을 꾸준히 실천 해왔다. 폐지 등을 팔아 엄마 혼자 자녀 넷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의 역할까지 하는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자녀 셋은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시켰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지난 8일 보건복지부가 주관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45회 어버이날 시상식에서 '장한 어버이’로 국민포장을 수상한 김인자(71)씨를 보은 수한초 김석현(6년), 김지수(6년) 어린이가 함께 인터뷰했다. <편집자>

▲ 지난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45회 어버이날 시상식에서 김인자(사진 오른쪽)씨가 황교안 대통령권한 대행을 대신해 정진엽 보건복지부장관으로부터 ‘장한어버이’ 국민포장을 받고 있다.

- 넉넉지 않은 삶을 살아오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직접 느끼신 가난은 어느 정도였나요?
오갈데가 없어 성당 밑 쪽방에서 생활했을 정도로 너무 어려웠어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잘 견디라는 신의 주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열심히 이를 악물었어요. 별거로 애들 아버지가 가족을 돌보지 않아 저 혼자 애들 넷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어요. 가난해 먹을 것이 항상 부족했지요. 어느 날 서울 갔다가 저녁에 도착해 애들한테 저녁 먹었느냐고 물었더니 ‘먹었다’는 말만 듣고 먹었는지 알고 혼자 저녁을 먹었어요. 알고 보니 저녁을 먹지도 않고 엄마 밥이 없을까봐 먹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 이었어요. 한참 클 나이인데 배가 얼마나 고팠겠어요. 이를 알고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엄마에게 이렇게 마음을 써준 착한 우리 애들을 위해서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김인자(사진 왼쪽)씨가 주워온 폐지를 트럭에서 내리고 있다.

-자녀들을 다 키워낸 지금은 어떻게 일상을 보내고 계신가요?
3남매는 결혼해서 살고 있고 몸이 불편한 큰 딸만 같이 살면서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폐지와 고철 줍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동네 일이 있으면 마을 화합을 위해서 동네일을 같이하고 군이나 면에 행사가 있으면 같이 참여해 일하면서 주변에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드리는 일을 하고 있어요.

-30년 가까이 소외계층을 위해 물품을 기증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지금까지 공공근로로 국유림 숲가꾸기, 읍사무소 취로사업, 호떡장사, 도배장판, 품팔이, 집 고쳐주기, 복지시설 장애인, 할아버지, 할머니 씻겨 주고, 청소, 빨래 등 몸으로 하는 일은 다 해봤어요.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콩 한 쪽도 나누면 배고픈 다른 사람이 허기를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1년 365일 폐지를 주워 판돈이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마음에서부터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윳돈을 가지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고 생각했다면 도울 수가 없었겠지요.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돕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어려운 이웃과 함께 행복을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 김석현, 김지수 어린이가 지난 8일 장한 어버이로 ‘국민포장’을 수상한 보은 김인자씨를 수한면 발산리 경로당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장한 어버이’ 표창을 받으셨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저는 무슨 상인지도 몰라요. 군에서 8일 날 상 받으러 서울을 가야된다는 말만 들었어요. 큰 상을 받을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장한 엄마도 못됐는데 운이 좋아서 받는다고 생각해요. 상을 받는다니 우리 애들이 생각나요. 부모 잘못 만나 어렵게 살면서도 바르게 자라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착한 애들에게 고맙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큰 상을 받도록 군수님을 비롯해 도와주신 관계자 분들과 주변에서 그동안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드립니다. 앞으로 몸이 허락하는 한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나 아닌 이웃을 위해 솔선수범하시는 데에 어떤 주관이 담겨있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히 주관이 있어 남을 돕는 것은 아닙니다. 가정은 넉넉하지 못했지만 콩 한 쪽도 나누면 배고픔은 면할 수 있어요. 30년 전 유난히 추운 겨울날 대문밖에 옷을 남루하게 입고 밥을 얻으러 온 사람이 있었어요. 지금은 거지가 없지만 그땐 간간히 동네에 있었어요. 우리도 어려웠지만 남아있는 밥을 줬더니 허겁지겁 먹는 것을 봤어요. 그때 마음이 너무 아파 이웃을 위해 살자고 결심한 게 계기가 되었어요.

▲ 보은 수한초 김석현(6년) 어린이

-억척스럽게 살아오신 평생 동안 특별히 기억에 남는 기쁘거나 힘든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제가 도움을 준 증초라는 곳에 사는 어떤 집 애기였어요. 추운 겨울날 폐지를 줍고 있는데 이 애기가 마트에서 따듯한 캔 커피 2개를 사서 식을까봐 가슴에 품고와 줘서 받고 가슴이 뭉클하고 보람도 느꼈어요.  
폐지 줍는 일을 하면서 교통사고가 6번 났어요. 그래서 허리와 다리 등 몸이 성한 곳이 없어요. 그렇지만 사지가 없는 사람에 비해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2003년 1월 이종동생과 온천욕이라도 하자며 유성온천에 갔다가 심근경색으로 길바닥에 쓰러졌어요. 병원에 갔더니 생존 가능성이 없다며 준비를 하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았는데 심장은 멈추지 않고 뛰었어요. 그때 부모님이 주신 목숨은 죽고 이후부터는 하느님이 덤으로 주신 목숨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희망하시거나 계획이 있으신가요?

▲ 보은 수한초 김지수(6년) 어린이

보은에만 장애 수급자가 1,000여명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들은 거동 불편 등으로 인해 집수리나 도배 같은 것은 엄두도 못내요. 그래서 이들의 집수리와 도배 등을 해주는 일을 계속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60이 넘었지만 건강이 허락 하는 한 폐지 줍는 일을 계속하면서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나눔을 계속 실천하려고 합니다. 또한 여건이 된다면 오갈 곳 없는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생활하실 수 있도록 복지시설을 운영하는 것을 꿈으로 갖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시는지 어린이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가난은 했지만 위를 쳐다보지 않고 더 어려운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부자로 살았어요. 아마 위를 쳐다봤다면 불행만을 탓했을 것이고 더 불행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랬다면 지금의 저도 없겠지요. 인간이 욕심을 부리면 그 욕심은 한도 끝도 없고 결국에는 불행해 진다고 생각돼요. 어린이 여러분들은 아직 어리니까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르는 효도와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말씀을 잘 따라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지요. 저는 나눔은 물질뿐만 아니라 정(마음)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친구, 이웃 등과 정을 나누면서 기회가 될 때 주변에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조그마한 나눔을 실천해 보기 바랍니다.

신대휴 국장  sdaeh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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