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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의 기억

이강록 우송대 교수 착한어린이신문l발행일201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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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 내 짝은 나보다도 더 궁벽한 시골에 살던 가난한 집 아이였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멀리서 자전거를 타고 온다고 알고 있었고 머리는 까치집 같았고 옷은 허름했다. 도시락 반찬은 늘 신 김치나 마늘장아찌가 전부였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재미있는 말을 할 줄도 몰랐다. 그저 바보처럼 잘 웃는 녀석이었다. 짝은 짝이었지만 대화도 놀이도 밥 먹는 것도 어느 것 하나 같이 할 것이 없었다.
그저 데면데면 지내던 사이였는데 둘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일방적으로 화가 난 일이었다. 쪽지 시험을 보고 짝끼리 바꾸어서 채점을 했는데 이 친구가 내가 보기에는 맞다고 생각한 답을 오답으로 표시했다. 나는 화가 났다.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내 답도 맞다고 소리죽여 말했다. 이 친구는 나를 쳐다보면서 그 특유의 멍청한 웃음을 보이려 했지만 내 화난 얼굴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대로의 답이 아니라는 나름의 저항이었을 것이다. 분해서 씩씩거리고 있다가 채점을 마치고 선생님께 내가 쓴 답도 맞지 않느냐고 여쭤보았다.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거리시다 세모 표시를 해주시곤 점수 반을 주셨다. 최소 반은 내 말이 맞는 것이었다. 도움은커녕 해를 입히는 짝 녀석에 대해서는 심히 유감이었다. 그 뒤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내 초등학교 시절에는 긴 책상 하나를 학생 둘이 썼다. 나는 책상의 정확히 중간 지점에 연필로 선을 그었다. 일종의 전선이었다. 선을 넘으면 응징에 들어갔다. 처음 몇 번은 경고에 그쳤지만 점점 더 말은 거칠어지고 기분에 따라서는 넘어오는 팔꿈치를 치기도 했다. 얻어맞을 때면 그 친구는 눈만 껌뻑거리며 나를 바라보곤 했다. 짝이 소심하게 반항할수록 나는 더 잔인해졌고 짝은 무기력하게 나의 폭력에 굴복했다. 양심은 가끔 경고음을 울려왔지만 나는 당시 잔인한 복수심과 승리감에 취해버리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운동장에서 놀고 있을 때였다. 교문 쪽에 아주머니 한 분이 서 있었다. 어딘가에서 짝 녀석이 나타나 쭈뼛쭈뼛 그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녀석이 어른에게 말했구나’하는 불안감과 동시에 녀석에 대한 증오심이 일었다. 몹시 마르고 병약해 보이는 허름한 옷의 아주머니가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짝 녀석은 그런 아주머니의 옷을 붙잡고 늘어졌다. 녀석의 변변찮은 모습에 더 오기가 생겼다. 나는 제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다. 아주머니는 매달리는 녀석을 이끌고 힘겹게 내 앞까지 와 서셨다. 짝 녀석은 어머니 뒤에서 옷자락을 잡아끌며 “집에 가”를 반복하며 훌쩍이고 있었다. 입술에 힘을 줘 악물고 버티고 서 있던 내게 아주머니는 지친 얼굴로 힘겹게 웃어 보였다. 갑자기 온몸의 긴장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손에 쥔 것을 내게 건네며 “에어어 어어” 마치 신음 같은 소리로 말씀하셨다. 짝 녀석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주머니는 사라져 버렸고 내 손에는 100원짜리 문구점 과자가 들려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가슴이 저렸다. 너무 괴로웠다. 복수나 응징을 핑계 삼아 짝을 괴롭히며 느꼈던 쾌감 같은 것들이 마치 더러운 진흙처럼 내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 같았다. 남을 굴복시키고 느꼈던 그 승리감은 아주머니의 용서나 100원짜리 문구점 과자 앞에서조차 너무나 부끄럽고 초라한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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