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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학자이며 한글창제 1등 공신 신숙주

김명철 선생님의 우리고장 역사인물6 착한어린이신문l발행일201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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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숙주 묵정영당

‘대대로 학문에 힘쓰고, 충효를 실천하며, 가족이 돈독하고 화목한 것을 가법으로 삼는다.”  (世守文學 忠孝敦睦 以而家法)’
위의 글은 문충공 신숙주가 가훈으로 남긴 것으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교훈으로 삼을 만한 글귀다. 신숙주(1417~1475)는 조선 초기의 학자로, 본관은 고령이며, 호는 보한재(保閑齋)이다. 뛰어난 학식과 문학적 재능으로 세종~성종까지 여섯 임금을 모셨으며, 정치적으로도 출세하여 영의정을 지냈으며, 정난, 좌익, 익대, 좌리 공신의 칭호를 모두 받은 인물이다. 특히 외국어와 언어에 재능이 뛰어나 세종이 한글을 창제할 때 외국의 말과 글을 연구해서 한글 창제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청주에서 보은으로 가는 국도변 가덕면 인차리의 ‘구봉영당’과 미원으로 가는 국도변 낭성면 관정리의 ‘묵정영당’은 모두 신숙주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후손들인 고령 신씨 문중에서 세운 것이다.
구봉영당은 가덕중학교 정문에서 보이는 서쪽으로 꼬불꼬불한 논을 가로질러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가면 나타나는 산자락 아래에 담장을 두르고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 구봉 영당에 모셔져 있는 신숙주의 영정은 원본이다. 이 영정에서 신숙주가 입고 있는 관복의 흉배 문양으로 보아 신숙주가 좌익공신이 되고 난 뒤의 모습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묵정영당’은 가덕에서 미원으로 가다가 4차선 대로에서 왼편으로 구도로가 갈라지고 이곳에 전형적인 시골 마을인 낭성면 관정리가 나온다. 이 마을 뒤쪽에 야트막한 언덕에 골기와집이 3채가 보인다. 왼쪽 건물은 ‘묵정영당’이고, 가운데는 ‘신중엄신도비’를 보호하기 위한 비각이며 오른쪽 담장을 두른 건물은 사당인 ‘육현사’이다.
이 묵정영당에 모셔진 영정은 구봉영당의 영정을 옮겨 그린 모사본으로 추정된다. 이 영정은 조선 초기 공신상의 전형을 보여주는 예술적 가치가 있는 유물로 채색이나 선의 묘사가 뛰어나다. 아울러 이 영정에는 정범조가 지은 영정에 대한 글이 들어있다.
구봉영당의 영정은 보물 제61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묵정영당의 영정은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08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숙주의 묘소는 경기 의정부시 고산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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